반갑다 아바나 - 쿠바 여행기 1

취향의 흔적
- 여행, 2017-12-02, resistan

쿠바에서는 인터넷을 쓸 수 없었다. 데이터 로밍도 안 돼서, SNS 등에 남긴 흔적도 없고, 정리한 건 사진들뿐이라. 다녀온 지 1년도 더 지났는데도 글로 정리해봐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긴달까.

벌써 1년이 지났다니!

여행 준비

정보 수집

항공권을 준비한 후에 했던 일은 쿠바 관련 글을 읽는 일이었다. 그리 많은 곳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가는 것의 차이는 컸다. 여정이 풍부해진달까. 쿠바를 다녀왔다는 사람들의 블로그와 커뮤니티를 찾아다녔고, 마침 국내에서 출간된 가이드북과 에세이도 찾아 읽었다.

여행 동료 찾기

현지 경비를 줄이기 위해 숙소와 이동 수단을 공유할 사람을 찾아봤다. 남미 여행 카페에 가입해서 같은 일정에 쿠바로 가는 사람들을 며칠 찾다가 그룹을 형성. 처음에 일정이 어중되게 겹치는 네 명으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쿠바에서는 열 명이 모였다.

출발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나리타행 비행기를 타려고 새벽부터 주섬주섬 나서서, 토론토까지 13시간, 아바나까지 4시간. 비행과 경유에 시간을 다 보내고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도착한 건 자정. 시차가 있는 점을 고려해도 이동에만 거의 스무 시간 이상 걸린 셈이다.

수하물을 찾고 입국 절차를 밟다보니 주변에서 한국어가 꽤 많이 들려서 놀랐다. 다들 각자 오는 것 같았지만 이래저래 10여 명은 돼 보였다. 이제 쿠바는 사람들이 꽤 많이 찾는 곳인가보다.

입국장을 빠져나오며 처음 느낀 건 바로 담배 냄새였다. 공항 청사가 그렇게 깔끔한 편은 아니었지만, 건물 안에서도 담배 냄새가 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아 그렇지, 여기는 시가와 럼의 나라였지.

숙소

쿠바에서 여행객을 위한 숙소는 까사(Casa)라고 하는 민박집이 절대다수라고 보면 된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아는 형태의 호텔도 있지만, 호텔 숙박료도 그렇고 여느 나라와 다를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고 한다. 까사는 정부에서 허가받은 사람이 자신이 사는 집의 방을 빌려주는 것이다. 도미토리 형태도 있고, 방을 빌릴 수 있는 곳도 있는데 가격은 미화 10~40불 수준. 조식 여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고, 투숙할 때 숙소 주인과 정하면 된다.

현관에 붙어있는 까사 표시. 기둥에 지붕만 얹어둔 것 같은 심볼이다

까사 마크와 트립어드바이저 표식이 나란히 붙어있다.

요즘은 에어비앤비에도 예약할 수 있는 까사가 제법 올라오는 모양인데 현지의 인터넷 접속이 불편하기 때문에 대개 예약은 이메일을 통해서 한다. 어쨌거나 내 경우에는 굳이 예약하기보다는 그냥 올드 아바나까지 들어가서 대충 현지에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환전을 조금 해서 동료가 예약했다는 까사에 갔다. 쿠바를 다녀온 사람들이 꽤 많이 늘어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호아끼나, 요반나 외에도 후기처럼 올라오는 까사 소개 글이 커뮤니티에는 꽤 있다. 그중에 우리가 예약한 곳은 카를로스 까사(Virtudes #210 apto 1/aguila y amistad. Centro Habana)였는데,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방이 다 차서 한 층 위의 다른 까사를 소개받았다.

외국인 이름은 철자도 잘 모르고 해서 그냥 한글로 표기하지만, 소개받은 아이데의 까사를 이용해보니 카를로스네 보다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아이데는 꽤 세련된 외모를 가진 할머니인데, 정말 손자 대하듯 잘 챙겨주셨다. 다만, 연세가 있고 영어로는 소통이 안 되니 예약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올드 아바나의 아침

아바나에 도착한 다음 날 너무 새벽 일찍 잠을 깨서 놀랐다. 내가 여행에 많이 들떴나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차 때문이었을 것 같은데, 한낮의 더위를 피해 숙소에서 낮잠을 한두 시간씩 잤던 이유도 몸이 적응을 못 해서 그랬던 거지 싶다. 스페인어권에 가니 본의 아니게 시에스타를 즐기게 되더라.

9월의 쿠바는 25~35도 정도의 기온에 우기지만 비는 오후 4~6시 사이에 30분가량 집중적으로 내리는 편이다. 우리야 추석 연휴를 틈타 간 거지만, 그렇게 습한 편도 아니고 태풍도 없었기에 좋은 풍광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조식

아이데 까사의 조식

조식을 먹기로 하면, 몇 시에 먹을지 미리 조율해둬야 한다. 사진의 빵은 아마 정부 배급품인 것 같은데 좀 딱딱하다.

조식의 면면을 보면 빵, 과일, 에그 스크램블, 주스, 커피, 우유 등 조리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둘이 먹기엔 좀 푸짐해서 남겨야 했는데 유기농법의 선진국답게 제철 과일은 맛있었다.

쿠바 내에서도 커피를 재배하기 때문에 정말 싸기도 하고 쉽게 마실 수 있다. 다만 먹는 사람이 선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커피에는 무조건 설탕이 들어간다. 전문점에서 일부러 시키지 않는 한 블랙커피를 마시기 어렵다. 평소에는 블랙만 먹는데, 일주일 내내 설탕 커피를 마시다보니 다 적응이 되더라.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그래도 여전히 블랙만 먹는다.

아이데 까사 테라스에서 본 풍경

아침에 일어나서 숙소의 테라스로 나가보니 미세먼지 따위와는 전혀 관계없는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환전소가 닫혀있을 시간이라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올드 아바나의 벽화

쿠바를 처음 실감하게 해 준 그림. 곳곳에 벽화며 낙서가 있는데, 문화권이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이른 아침이라 한산한 빠세오 델 쁘라도(Paseo del Prado)로 나가 영원히 공사 중인 것으로 유명하다는 까삐똘리오(Capitolio)도 보고, 말레꼰으로 향했다.

까삐똘리오

국회의사당 건물. 꽤 오래전부터 공사를 해왔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좀체 끝나지 않는 모양이다.

정비 중인 클래식카 택시 기사

이 때까지만 해도 여기가 수많은 클래식카의 전시장처럼 변할 줄은 몰랐다.

말레꼰

델 모로 요새

말레꼰에서 바라본 델 모로(Del morro)

양쪽 끝으로 델 모로와 베다도(신도시)가 위치한, 말레꼰은 공존의 공간이었다. 그저 열려있다는 느낌이었다. 델 모로 쪽의 끝에서 낚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헤밍웨이도 이 바다의 어디 쯤에서 낚시를 즐겼겠지.

말레꼰의 끝에서 낚시 중인 사람들

렌즈에 신경을 안썼더니... 망했어요.JPG

베다도 방향으로 걷다 보니 트럼펫을 연습하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풍경에 넣으려 카메라를 들면 악기를 내리고 빤히 쳐다보길래 좀 미안했다. 인물이 들어가면 물어보고 찍자

빠세오 델 쁘라도에서 만난 반짝이는 올드 비틀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올드카, 다채로운 듯 비슷한 색으로 칠해진 건물들.

반갑다 아바나.

뱀발

이 글 한 편을 쓰는데 9월부터 거의 2개월이 걸렸다. 사진을 보면서 여정을 다시 떠올려보는 중인데, 첫 날의 두어시간을 이렇게 길게 쓰다니. 언제 완결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