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책도 여러 권을 동시에 보는 편이고, 쓰다만 글이나 칠하다 만 그림이나, 벌여두고 수습을 미루는 일이 한 둘이 아닌 듯하다. 아, 뭐든 후딱 해치워야 했던 그놈은 어디로 갔을까.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일기처럼 꼼꼼히 따져 쓰는 것 역시 성미에 안 맞다. 오사카 갔던 이야기는 어느새 가물거리고. 이런 글 저런 글 늘어놓고 쓰다 보니 공개 시점이 늦어지고, 내용도 늘어지고… 아마 어느 날인가 돌아보는 추억이라 쓰고 미화된 기억이라 읽는 것 팔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목적지는 중국
회사 일도 있고 아마 추석 전까지는 어디 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바빠지기 전에 반드시 여행을 다녀오리라 각오하고 있었던 참이라 친구와 함께 양꼬치엔 칭다오(청도)에 갈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여차 여차 하다보니, 친구 녀석은 배신의 아이콘이 되었고, 칭다오는 혼자 다니기엔 좀 심심한 곳이지 싶어 다른 목적지를 찾아야 했다.
휴가를 하루 쓰고 2월의 마지막 주말과 삼일절을 포함해서 3박 4일. 그 안에 다녀올 만한 거리와 여정이 필요했다. 일본은 작년에 두번이나 다녀왔으니 제외. 물망에 오른 곳은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 칭다오, 백두산, 대만, 몽골, 필리핀, 태국, 블라디보스톡 정도. 출발까지 2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하나 하나 찾다보니 4일 기준으로 비행편을 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등에 고민이 생겼다.
인터넷에서 여행기 검색도 하고 주변에 묻기도 하면서 하나씩 제외해 나가다 보니… 나처럼 휘휘 다니는 사람이 꼭 한 곳에 머물면서 며칠씩 보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펼친 것이 바로 중국 지도.
무협지
내 또래 남자들이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겪었을 만한 것 중 하나가 무협지1 탐독이 아닐까 한다. 영웅문2이라는 소설을 아시는가. 나도 고1 때였나…. 영웅문으로 무협 소설에 입문했고, 김용으로 시작해 여러 작가의 소설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80년대 중반에 번역 출간된 소설을 90년대 초에 읽었으니 시기가 그리 이르다 할 수는 없지만 음…. 그건 뭐, 그땐 내가 어렸으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정보라는 게 어느 정도 패턴화되긴 했지만 무협지에는 중국에 관한한 꽤 많은 정보가 있다. 한국식 한자 독음이지만 사천, 안휘, 절강, 해남 등의 성(省), 도시 뿐만 아니라 태산, 숭산, 무당산 등 어디 붙었는지도 모를 여러 지명도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심심치 않게, 아니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소주(苏州, 쑤저우)와 항주(杭州, 항저우)에 관한 이야기다.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杭)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아니, 대체 얼마나 아름다우면 이런 말이 전해 내려올까. 현대 중국인들도 노후를 보내고 싶은 도시 1위로 항주를 꼽는다고 한다.
‘그래 상해에서도 가까우니, 소주, 항주까지 세 도시를 다녀보자.’
그래서 한 3일 쯤 폭풍 검색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가보지도 않은 곳에 대한 정보가 쌓인다. 성격 탓이겠지만 동선을 더 최적화하면서도 볼만한 곳을 찾게 됐다. 소주가 볼만한 이유 중 하나는 베네치아처럼 운하가 발달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해를 조사하다 보면 꼭 소주가 아니라도 상해 주변에는 주가각(朱家角, 주자오지에)이라던지, 우전(乌镇)과 같은 수향 마을이 많다. 그렇게 이것저것 조사하다 보니 딱히 소주까지 동선을 크게 그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확정한 최종 목적지는 항주, 서당, 상해.
이것저것 챙겨둬야지
중국은 여행에 비자3가 필요하다. 두 사람 이상의 단체 비자는 1인당 3만 5천원에 발급 가능한데, 개인 비자는 오히려 두 배 정도 들더라. 도미토리 외에 객실을 배정받아야 하는 숙소도 그렇지만 혼자라서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 또 생기는 점은 삭제한 배신의 아이콘이 떠오른다 나 홀로 여행의 아쉬운 점이랄까. 개인 비자를 신청했더니 확인 전화가 왔다. 목적지가 어딘지를 물어보는데 신청할 때 기재한 곳으로 대답해야 한다. 항저우 간다고 했더니 상해라고 쓰여 있다며 확인하더라. 그래서 상해 IN/OUT이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면 실제 경유지 등을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중국 지도 검색하기
중국어를 모른다면 중국 지도에서 특정 위치를 찾아내기 쉽지 않다. 구글 지도를 이용할 경우 한자 독음을 입력하면 제대로 검색이 되지 않는다. 한글로는 ‘상해’라는 키워드 대신 ‘상하이’라고 입력하는 편이 낫다. 물론 上海라는 한자를 직접 입력하거나 영어로 shanghai를 입력하는 게 더 정확하다. 하지만 해당 위치의 발음을 알아야 검색 또한 가능해지니 어려운 점이 있다. 영어로 해석해 검색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리 쉽지는 않았다.
바이두 지도를 추천하는 경우가 있어서 설치해봤는데 인터페이스가 모두 중국어라 내 경우에는 오히려 접근성이 떨어진달까. 아이폰은 기본 지도 앱에 중국 지역이 예상 이상으로 잘 나온다. 애플은 역시 한국만 싫어하는 듯 찾아봤더니 중국 업체의 지도 정보를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구글맵과 애플 지도를 병행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중국에서는 와이파이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접속이 안 된다. 인터넷 망에서 아예 막는거 같다. 데이터 로밍을 이용할 경우에는 접속 할수 있으니 참고하자.)
교통편 찾기
내가 구한 항공편은 푸동 공항으로 들어가서 홍차오 공항으로 나오는 것이다. 항공편 외에 도시 간 이동을 위해 교통편을 확인해봤다. 고속철도나 기차 편은 국문으로 예약 가능한 사이트도 있지만, 운행 중인 모든 차편이 나오는 것은 아닌 데다 시외버스 등의 교통편은 정보 찾기가 쉽지가 않다.
결국, 중국 여행 커뮤니티를 찾아서 가입했다. 원하는 정보가 있기는 했지만 상세한 편은 아니라서 동선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중국어는 안되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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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아마 이 글을 시리즈로 쓸 겁니다. 다만, 다음 편이 언제 나올지는 기약 못 하겠군요.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게 3월 2일이고 공개까지 리비전이 30개라는 사실만 밝혀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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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를 비롯해 환상 문학, 통칭해서 장르 문학 쪽에 취미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약간 덧붙이자면…. 현재의 국산 무협지가 현지화되었다고는 해도 대부분은 중세 이후의 중국을 배경으로 해서, 무술을 익힌 인물이 손발이든 머리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이 날아다니며 칼부림하고, 장풍을 쏘는 것이 무협지의 모든 것은 아니다. 중국의 역사, 지리, 문화 역시 중요한 소재로 사용하고 각 지역의 특징도 곧잘 다루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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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문은 중국 작가 김용의 연작 소설인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한 시리즈로 엮어 번역 출간한 것이다. 케이블 TV에서 관련 중국 드라마가 방영되는 걸 한 번쯤은 본 적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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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상해 등 일부 대도시의 경우 경유지로 기능을 하는편이라 72시간 이내는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