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접근성

취향의 흔적
- IT/웹, 2007-05-04, resistan

누구나라는 말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또 누구나 불특정한 사고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며, 질병이나 상처로 고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그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며 살아가지는 않는 편이다. 대개는 보험을 들어두곤 하겠지만,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대책은 될지언정 인프라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사회는 이런 경우를 당한 사람들을 위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어서 대중 교통 수단에는 노약자석이 있고 보행자 도로나 계단이 있는 곳에는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마련돼있다. 요즘은 아파트 현관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다. 이런 수단들은 이미 복지나 더 나은 삶의 상징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휠체어를 탄 사람보다 유모차나 손수레를 끄는 사람들이 경사로를 이용하는 빈도가 높다. 아파트의 경우에는 자전거를 옮길 때 이용하기도 할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이 낮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누르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약자나 소수를 위해 배려를 한 부분들이 실제로는 훨씬 폭넓게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웹 사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웹 사이트들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사이트라며 만들어지고 있지만, 분명 그 사이트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각에는 시각적, 청각적, 혹은 지체의 자유가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네 웹 사이트에서 이런 노약자들을 배려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 나라 웹에서 “누구나”라는 말은 모든 사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웹은 평등하다?

윈도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OS에서는 장애인처럼 정상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거의 사용하지 않을 윈도 제어판의 “내게 필요한 옵션" 항목이나 브라우저의 텍스트 크기를 제어할 수 있는 메뉴 같은 것이 있겠다. 그런데, 왜 웹 사이트는 이런 사람들이 이용할 수 없을까. HTML이 지원하지 않으니까?

아니다. HTML은 이미 이런 사람들이 웹에서 동등하게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미지를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서 대체 텍스트를 넣을 수 있는 속성을 이미지 태그에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져있다. 또한 표처럼 순차적으로 읽어나가서는 파악하기 힘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테이블안의 데이터 간에 연관성을 부여해줄 수 있는 속성도 있다. 웹 표준을 제정하는 World Wide Web Consortium(이하 W3C)에서는 Web Accessibility Initiative(이하 WAI)라는 부설기구를 두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웹을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제도나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Web Contents Accessibility Guidelines(이하 WCAG)부터 Authoring Tool Accessibility Guidelines, User Agent Accessibility Guidelines까 지 웹 페이지의 컨텐츠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부터 드림위버같은 웹 페이지 저작도구나 브라우저에 이르기까지 접근성을 향상 시키기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사항이 이미 규정되어있다. 실제로 드림위버나 대부분의 브라우저들은 이런 지침들을 잘 지키고 있는 편이며, 접근성이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웹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컨텐츠 페이지들인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접근성 지침이 이미 나와있고, 2005년 10월에 국가 표준으로 제정된 상태이지만, 여전히 사이트에서 이를 제대로 지키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최근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발표한 웹 접근성 사용자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웹 사이트 800여개를 평가한 결과 접근성 준수율 평균이 정부는 50.6%, 시민사회단체 46.3%, 민간부문 44.5%, 국회의원 및 정당이 40.7%였다. 물론 이 평가는 KWCAG 1.0 기준이지만 약간 조금은 다른 평가 방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접근성 전반에 대한 평가였다기 보다는 특정한 부류의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가를 측정하는 평가였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원만했던 이 평가에서도 우리 나라의 웹 접근성은 전체 평균이 50%를 넘지 못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수십만개의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을 것이고 정부 기관이 차지하는 비율 등으로 고려하여 추정한다면 실질적으로 접근성의 준수율은 훨씬 더 낮을 것이다.

웹은 누구나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평등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웹은 정보를 담는 그릇이다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오프라인 상점을 이용하기 보다는 온라인 상점을 이용해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훨씬 쉬울텐데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물건을 구입하기 쉽게 만들어진 사이트가 우리나라에는 없다. 이미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차별해왔다. 시각장애인용 사이트를 별도로 만들어두고, 비장애인용 사이트와는 다른 컨텐츠를 제공해온 것이다. 최근 amazone.com은 미국 시각 장애인 협회(National Federation of the Blind)와 협력하여 시각 장애인들도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amazone.com도 그렇지만, 해외의 사이트는 텍스트 기반인 경우가 많다. 이는 해외의 웹 사이트 제작자들이 그림을 그리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웹 페이지의 용도가 무엇인지 분명히 하고 제작을 하기 때문이다. 최초에 HTML이 만들어진 목적 역시 정보를 손쉽게 공유하고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정보에는 이미지가 있을 수도 있고 도표나 수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국내에서 웹 디자인을 보는 시각은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더 잘 보이게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화려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점에 치우쳐있다. 웹을 정보를 제공하는 도구로써 인식하고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그럴 듯한 브로슈어로 만드는데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보다 많은 이미지와 멀티미디어 요소로 중무장을 하고, 사용자 사용 조건보다는 얼마나 신기술을 화려하게 사용하는가에 주안점을 두곤 한다. 최근 모 쇼핑몰과 통신사 웹 사이트의 메인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던 플래시와 플렉스 무비가 단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저 사양 컴퓨터나 회선이 느린 곳에서는 사용조차 힘든 사이트가 되어버린 것이다.

장애의 종류와 특별한 장치들

시각장애

전맹인 경우 눈으로 웹서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 웹서핑을 하게된다. 이때 화면에 나오는 내용을 읽어주는 것이 화면낭독기(Screen Reader)라는 소프트웨어이며, 커서를 찾을 수 없기때문에 모든 조작을 키보드로 하게된다.

약시는 쉽게 말하면 안경을 써도 통상적인 시력을 확보할 수 없을만큼 눈이 나쁜 경우를 말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하려면 얼굴을 모니터에 바짝 붙여야만 그 내용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OS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확대 옵션을 이용하거나 해상도를 매우 낮춰서 사용하곤 한다. 반대로 화면 배치가 매우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편함도 오기 때문에, 화면을 확대해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노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며, 색약때문에 컨텐츠 내용의 중요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웹 사이트의 미화도 중요하지만 저대비(low-contrast), 색상만을 이용해 정보간의 격차를 두는 등의 디자인을 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생각보다 시각의 부자유로 인해 컴퓨터나 웹을 사용하는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으며 이를 우리는 충분히 배려할 필요가 있다.

청각장애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웹 서핑을 하면서 불편을 느끼는 경우는 음성이나 음향이 독립적으로, 혹은 함께 제공되는 경우라 하겠다. 최근에는 동영상을 제공하는 사이트가 늘어나면서 자막이 함께 제공되지 않아, 청각 장애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화면만을 멀뚱멀뚱 쳐다만 봐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를 위해 동기화된 자막을 제공할 필요가 있으며, 자막 제공이 어렵다면 전체 내용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원고가 함께 제공될 필요가 있다.

지체장애

지체 장애인의 경우에는 버튼이나 볼이 매우 큰 키보드, 마우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 손가락을 대신하거나 발로 조작하는 입력장치, 혹은 이를 보조하는 도구들도 사용되고 있다. Apple OSX나 Winodws Vista에서도 예를 볼 수 있지만 음성으로 직접 입력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개발되고 있다.

웹 접근성을 높이려면

웹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원칙은 누구에게나 동등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웹 사이트의 기본 구성을 텍스트로 먼저 만들고 디자인을 입혀나가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한국형 웹 컨텐츠 접근성 지침(Korea Web Contents Accessibility Guidelines, 이하 KWCAG) 1.0에서는 웹 사이트의 접근성 향상을 위한 항목으로 크게 네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는 아래와 같다.

인식의 용이성

인식의 용이성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웹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컨텐츠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비장애인 뿐만 아니라, 시각이나 청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동등하게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지의 경우에는 alt(alternate text) 속성을 이용하여 대체 텍스트를 제공해야하며, 플래시와 같은 멀티미디어 요소에 대해서도 그것을 직접 볼 수 없거나 작동하지 않는 환경에서 동등한 내용을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대비가 너무 낮아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어서는 곤란하며, 파이 그래프와 같은 경우에는 무늬를 넣어 색상만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색약을 위해 청-록, 적-녹 등의 색 조합을 피해야 할 것이다.

운용의 용이성

시각 장애인의 경우 커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마우스를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화면낭독 소프트웨어와 키보드를 이용해 컴퓨터를 사용하게 된다. 또한 지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용하는 보조 입력기기들 역시 커서를 직접 포인팅 할 수 없는 경우 키보드에 대응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웹 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onmouseover나 onmouseout, onclik 처럼 마우스에 대응하는 형태로만 사이트가 동작하도록 만들어서는 안된다. 또한 Tab 키 등을 이용하여 전후 이동을 하게되기 때문에, 컨텐츠를 순차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의 용이성

일반적으로 표의 경우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의 방향으로 코드가 작성되게 되는데 시각 장애인이 사용하는 화면 낭독 소프트웨어의 경우 이 코드 순서대로 표의 내용을 읽어주게된다. 이 때 table 태그만을 이용한다면, 단순히 어떤 단어들을 나열만하게 될 것이고 시각 장애인은 그 표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표와 표가 아닌 것들에 대한 구별이 필요하고, 태그를 의미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는 웹 표준을 준수함으로써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표를 사용할 때도 scope나 headers 등의 속성을 이용하여 셀 간의 관계를 분명히 해준다면 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앞의 경우처럼 HTML 태그에는 문서와 문서, 컨텐츠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도구나 속성이 이미 마련되어 있으므로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신기술의 사용

웹 접근성이 신기술과 배치되는 개념은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시점에서 발표되어 있는 새로운 기술들을 모두 웹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브라우저나 저작 도구에까지도 이미 지침은 나와있고, 플래시나 미디어 플레이어 등에도 접근성에 대한 대책은 충분히 마련되어있다. 다만, 작금의 문제는 이러한 멀티미디어 요소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동작시켜줄 수 있는 부가 장치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일례로 국내에 판매되고 있는 한글 화면 낭독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는 플래시를 이용한 메뉴 등에서 그 내용을 정확히 읽어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면 관계상 보다 KWCAG의 구체적인 항목들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기에, 세부 지침들은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나 정보통신접근성향상포럼 등에서 찾아 보길 권한다.

웹 접근성은 인권과 함께 보다 나은 사용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 때문에 웹 사이트 운영하는 곳이라면 웹 접근성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몇 년 전부터 정부에서는 각급 기관 사이트에서 웹 접근성을 향상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매년 웹 접근성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2007년 상반기부터 “웹 접근성 품질마크 인증제도”를 시행해 웹 접근성이 높은 사이트에는 접근성 마크를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웹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웹 접근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웹 표준을 잘 지켜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다. 웹 표준과 함께 웹 접근성은 현재의 웹이 개선되어 나아갈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더 나은 웹에 대한 논의와 개선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야 하겠지만, 웹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하게 웹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월간 w.e.b. 5월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