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거리 - 쿠바 여행기 3

취향의 흔적
- 여행, 2017-12-09, resistan

거리, 골목. 어쩌면 우리에게는 그 폭으로 구별지어질 말이다. 올드 아바나를 걸으며 이런저런 풍경을 사진으로 담다 보니, 같은 말인 듯 다른 느낌의 여러 길을 만났다.

빠세오 델 쁘라도에서 본 벽화 아바나 비에하를 나오며 본 벽화

벽화가 있었다

아바나 시내에서 만난 벽화는 우리나라의 몇몇 도시의 관광지처럼 일부러 조성한 것 같진 않았다.

제일 처음 발견한 벽화는 숙소 건너편 건물의 찰리 채플린. 길에서 잘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까사 간판을 대신하고 있었다.

빠세오 델 쁘라도1부터 아바나 비에하2, 우리 숙소가 있던 골목길의 그래피티와 시외로 나가던 길에 본 어느 아파트의 벽까지도. 분위기나 화풍이 다른 그림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는 재미가 있다.

아바나 거리의 체 게바라와 혁명을 상징하는 벽화

체 게바라나 혁명의 주역들, 그 상징들은 장소를 떠나 워낙 자주 보게 된다. 그 빈도가 높다 보니 오히려 혁명과 승리를 기념하기보다는 상품화한 것 같다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드는 건… 지나친 걸까.

올드카

아바나 시내에서 만난 올드카들

아직도 움직인다는 게 신기한 차들이 차들이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아바나의 도심. 섬나라에 바다가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차가 많은 곳은 예상외로 공기가 탁하다. 매연 저감이란 말조차 없던 시절에 생산된 차들이 거리를 메우니 오죽하랴.

요즘 차도 없진 않지만, 금방이라도 멈출 것 같은 차가 훨씬 많다. 그렇지만 오픈카는 대개 광택이 날 정도로 깔끔하게 관리되어 관광객을 태운다.

일반 택시들은 목적지까지 거리에 따라 가격 흥정을 해야 하지만, 아무래도 외국인에게는 바가지 씌운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관광용 오픈카는 대개 코스나 시간 단위로 가격을 부른다. 까피톨리오 앞에서 출발하는 투어 코스의 경우 같이 탈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타볼 만하다. 이동을 위해 따로 부르거나 혼자 타기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까피톨리오 풍경

까피톨리오 앞은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로 언제나 붐빈다

상점

우리 같은 여행객들이 다니는 곳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점포가 많았고, 그런 곳은 아무래도 눈에 잘 띄었다.

아바나의 노점과 가게 풍경

왼쪽 위부터 빠세오 델 쁘라도의 노점, 오비스뽀 방면의 과일 가게, 빵 가게, 센트로 아바나의 식료품점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가게가 소박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더운 날 냉장고 없이 널어놓고 파는 정육점이라던지, 몇 종류 되지도 않는 빵을 잔뜩 쌓아놓고 파는 가게라던지.

비어있는 슈퍼마켓 진열대.
그렇다. 또 술이다.

작은 상점에 들어가 보니, 계산대에는 방명록 같은 장부가 있었다. 현지인의 경우 생필품은 약간의 비용으로 할당된 품목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거래의 형식을 취하지만 배급에 가까운 것 같다.

줄을 서서 차례가 되면 정해진 만큼 받아서 돌아서고. 배급이라고 하면 흔히 생각하는 장사진은 볼 수 없었다.

허름한 백화점에서 본 브랜드 상품은 다른 나라 못지 않게 비쌌다. 잘 팔리지 않는 듯 진열 상태도 좋지 않았고. 백화점 지하에 슈퍼마켓이 있어 들렀더니, 생각보다는 많은 종류의 상품이 있어 놀랐다. 하지만 우리네처럼 진열장이 넘칠 듯 채워져있진 않았다. 이빨 빠진 듯 비어있는 진열대를 보니 여기가 통제되는 사회구나 싶었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서 나올 때 물품과 영수증을 일일히 대조해서 확인 표시까지 하는 것이 도둑은 어디나 있는 건가 싶기도 했고.

음… 어쩌면 우리는 풍요라는 이름의 과잉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모네다로 점심 먹기

햄버거 세트 메뉴

카를로스에게 물어 찾게 된 저렴한 햄버거 가게 CUMBA KING. 모네다를 한 번 써보겠다고 일부러 찾아갔다.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햄버거 하나에 24~75 모네다.

2~3쿡 정도면 콜라3가 포함된 기본 세트 메뉴를 먹을 수 있다. 기왕 온 것 세트를 시켰더니 메뉴의 사진과 정말 똑같은 음식이 나왔다. 프렌치프라이 따위가 포함될 리 없다. 맛은 그다지…

다양한 음식을 먹어본 것은 아니지만 사실 쿠바에선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별로 없다. 야채나 과일은 모두 유기농인데다 신선했지만, 조리되지 않은 맛이야 크게 다르겠는가.

쿠바에 가 본 많은 사람들이 랑고스타(랍스터)를 추천하지만 내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 네 곳쯤에서 먹어본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질기고 짰다. 내가 미식가는 아니지만, 별로인 건 별로인 거다.

오히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식 삼아 먹었던 샌드위치가 기억에 남는다. 재료는 몇 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그래서 미국식 쿠바 샌드위치가 맛있다고 하는건지.

아멜 거리(Callejón de Hamel)

마침 날이 맞아서 일요일에만 공연이 열린다는 아멜 거리로 향했다. 아프로 큐반(아프리카계 쿠바인)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 했다.

점심을 먹고 천천히 걸어가 보자며 나섰지만 땡볕을 너무 안일하게 여긴 탓에, 더위에 허덕이며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공연은 시작됐고 사람들은 붐비고 있었다.

타악기 리듬에 사람의 목소리로 멜로디를 얹고, 그에 맞춰 격정적으로 춤추는 무희를 만났다. 쿠바 특유의 라틴 음악 대신 룸바를 즐길 수 있다.

사실 거리라고 부르기엔 좁은 감이 있지만 아멜 거리는 아바나의 여느 곳과는 다른 색깔과 조형물로 채워져 있다. 아바나에서 여기만큼 강렬한 색감과 패턴으로 장식된 곳을 보지 못했다.

아프리카 전통 춤을 추는 무희
아멜 거리 입구 아멜 거리 풍경
아멜 거리 풍경

따로 찍은 사진을 알아서 붙여버린 구글 포토. 좀 엉성해 보이지만 잘 했어

나중에 찾아보니 살바도르 곤살레스라는 예술가가 90년대에 조성했다고 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조형물은 폐자재를 이용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가본 적 없는 아프리카 어느 곳의 토템같기도 하고.

식민 지배, 해방과 사회주의, 냉전으로 이어진 격동의 세월. 여러 시대와 인종이 뒤섞여 만들어진 또 다른 문화는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한 섣부른 추측은 여기까지만.

혁명 광장

호세 마르띠 기념탑

기념품 시장이 있다는 베다도(아바나 신시가지)를 들렀지만 보이는 모습이란 게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도시 풍경이었다. 딱히 감흥이 없달까. 그래서 대략 넘어가고…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더위를 달랜 후 혁명 광장으로 향했다.

혁명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호세 마르티 기념탑과 박물관이 있는데, 8차선쯤 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택시 기사가 이 앞으로 우리를 내려줬는데, 횡단보도가 없는 곳이라 빠르게 달리는 차를 적당히 피하며 건너야 했다.

호세 마르티는 19세기 말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었다는데, 거리에서 만나는 기념물을 보자면 체 게바라보다 더 추앙받고 있는 것 같았다.

혁명 광장 뒤로 체 게바라와 까밀로 시엔푸에고스의 모습을 조형해둔 건물이 서있다.

어쨌든, 혁명 광장으로 건너가서 느낀 건… 정말 덥구나 사진으로만 보던 곳에 직접 와 봤구나 이상은 아니었다. 주변에 볼만한 게 있을지 둘러봤지만 딱히 찾을 수 없었다. 국경일 행사 같은 게 있으면 모를까 평소의 이곳은 여행자들이나 들러보는 곳이지 싶었다.

다른 날에 찍은 같은 곳의 사진이 있기도 하고, 하루에 있었던 일을 끊어서 장소에 맞춰 쓰다 보니 장황해지기도 하고. 남은 아바나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다음 편에선 다른 곳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뱀발

덧붙일 사진이 많다 보니 편집도 하게 되고… 사진이나 영상이 들어가니 뭔가 많아 보이지만, 입력만 어려워졌다. 워드프레스 떠난 걸 이럴 때 아쉬워하게 될 줄이야. 괜찮아 코딩하면 돼. 이제 커밋하자

  1. 빠쎄오 델 쁘라도(Paseo del Prado): 까삐똘리오를 끼고 있는 올드 아바나의 중심 도로 

  2. 아바나 비에하(Habana Vieja): 까삐똘리오의 동쪽에 있는 아바나 구시가지. 오비스뽀나 아르마스, 대성당 광장 등 오래된 건물 대부분이 이쪽에 있다. 

  3. tuKola: 오래전에 먹어본 콤비 콜라의 맛이랄까. 쿠바에서는 수입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산품은 대부분 국내 생산이다. 미국의 지근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경제 봉쇄 등을 당하다 보니 어지간한 건 직접 생산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