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이 가야할 길

취향의 흔적
- IT/웹, 2007-07-31, resistan

지난 5개월간 웹 표준과 웹 접근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웹 표준이란 어떤 것이며 현재 국내의 상황은 어떤지, 왜 지켜져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웹 사이트를 더 잘 만들 수 있는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올해 중순까지 미래의 웹에 관한 여러 컨퍼런스나 세미나, 토론회 등이 있었고 많은 전문가들이 Web 2.0, 웹 표준, RIA 등에 관해 이야기하며 미래에 웹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미래를 만들어갈 기술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왔다.

원론으로 돌아가는 듯 하지만, 웹이라는 도구가 무엇을 위해,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변화를 맞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그 시작을 되짚어 보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웹은 왜 만들어졌나

흔히 웹의 역사를 말하면 Tim Berners-Lee 경이나 정보 공유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하게된다. 이것은 웹이 고안되기 이전의 정보 저장을 위한 수단이 종이처럼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는 매체를 사용하는 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컴퓨터가 등장하고 디스크라는 저장 매체가 나왔지만,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저장 용적의 확장 이상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통신 수단은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서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였고, 그 중 하나가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웹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이 웹이라는 수단은 기본적으로 Markup 언어를 통해서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보의 공유라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특정 대상이나 그룹만을 위해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공유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웹을 제작하는데 사용되는 많은 방법들은 보안 등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도 한다. 그래서, 정보를 담기위한 그릇으로써 Markup 언어만이 아니라, 서버 사이드에서 사이트를 제어하는 언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 웹이 Telnet이나 FTP, Usenet 등 여타의 인터넷 서비스 방식에 비해 보다 시각적으로 인식하기 쉬운 형태라는 점 때문에 다른 프로토콜을 이용하는 서비스를 끌어오기도 하였다.

이런 요소들이 현재의 웹을 만들어냈으며, 단순히 문서의 저장고 역할만이 아니라 사회적, 상업적 가치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웹을 진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Web 2.0

2005년 하반기부터 Web2.0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거론되고 있고, 현재에는 관련 내용이 이미 많이 알려져있다. 특정한 기술이라기 보다는 진화하고 있는 웹의 특징을 간추린 이 단어는 많은 사람들이 그 실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실제로 Web 2.0은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는 '거품이 빠져버린 IT 시장을 살려내기 위한 상업적 단어'만은 아니라 할 수 있다.

UCC의 본래 의미가 무엇이었든, 현재 대한민국에서 UCC라는 말을 못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흔히 인터넷이라고 부르는 웹은 이미 한국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파고 들었고, 어떤 면에서는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빠르고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Web 2.0이 어떤 식으로 해석이 되던, 기본적으로 진보하는 웹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고착화되었던 웹 콘텐트와 서비스 모델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웹이 더 많은 장치에서 더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까워진 미래, 유비쿼터스

90년대 후반에 폭발적으로 사용자가 증가한 휴대폰부터, MP3, PMP, 휴대용게임콘솔, UMPC, 노트북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기계를 휴대하고 다니는 일이 흔해졌다. 게다가 이런 모바일 장치들은 단일 용도가 아닌 다용도 기기(Conversions)로 변화하고 있다.

고성능의 전자장비와는 무관해보였던 자동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GPS 기술은 길을 안내해주는 차량용 네비게이션으로 등장하였고, 버스의 위치를 확인하여 언제 원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를 안내해주는 시스템(BMS:Bus Management System)이 사용되고 있다.

최근 TV의 아파트 광고는 버튼으로 제어하는 주거 환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투명도를 변경할 수 있는 스마트 유리, 집 안팎의 전화를 통합해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 가정 내의 전자 제품을 하나로 통합해서 제어하는 홈 서버 시스템 등 우리의 생활을 좀 더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줄 기술이 하나씩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단방향 시청만을 해왔던 TV는 현재 IPTV라는 이름의 양방향 서비스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방송국에서 송출되는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때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단순히 수신 중인 채널 중에서 골라서 보는 것이 아니라, 리모콘 등의 입력 장치를 통해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선택하여 다운로드 받아 시청하는 형태이다. 이는 나아가 쇼핑 채널을 시청하다가 리모콘의 버튼으로 바로 상품을 구매한다던지, 프로그램의 출연자 정보를 TV 화면상에서 바로 검색해볼 수 있는 시스템을 예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면 운전 중에 사용하는 네비게이션 프로그램이 기존에는 목적지까지의 도로만을 찾아줬지만, 이제는 같은 목적지라도 이용할 도로의 상황을 파악하여 더 빠르게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서비스가 나타났다. 이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던 정보와 함께 관련 정보를 함께 적용하여 사용자가 더 유용하게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현재에는 단방향에서 양방향으로, 단일 정보에서 관련 정보를 포함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더욱 복잡한 정보를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여 제공하는 시대가 올 것임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기계가 인터넷을 쓰는 세상

그 동안 우리가 웹 사이트를 만들어왔던 방식은 사람이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웹 사이트의 외형적인 디자인을 중시해왔다. 물론, 웹 사이트 이용의 주체는 사용자이며 사람이 인식하고 사용하기 쉬운 형태로 만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현재는 기계가 쉽게 인식하고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전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유비쿼터스 시대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들었던 예에서처럼, 중심이 되는 정보에 관련 정보를 덧붙이는 기술(Mash-up)은 그것이 현재에도 특정 조건을 통해 명확하게 걸러질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견하는 것처럼 미래에는 사용자가 원하는 내용을 더 폭넓고 깊은 정보 기반을 통해 찾아내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용자는 보다 쉽게 명령하고, 기계는 그것을 적절히 해석해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를 알려주게 될 것이다. 현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용자가 직접 원하는 키워드를 정하고 조합하여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 중인 기기가 알아서 찾아주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풀어 설명하자면, 사용자가 목이 말라 오렌지 주스를 먹고싶다고 말한다면 냉장고가 현재 남아있는 음료수를 파악하여 오렌지 주스가 있는지를 음성으로 알려줄 것이고, 없다면 사용자가 평소 선호하던 음료를 권하기도 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사용자의 식료품 구입 패턴을 파악하여, 부족한 것을 바로 주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웹 표준, 데이터 표준

웹 표준을 지키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단순히 그것이 하나의 규약이기 때문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보를 표현하는 한가지 방식으로 웹을 바라볼 때, 이는 웹 콘텐트를 데이터로 간주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웹 콘텐트를 더 구조화하고 체계적으로 표시하는 방법으로써 웹 표준이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에서 다뤘던 많은 미래 지향적인 기술이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런 기술이 이용할 수 있는 정보 인프라가 구축되어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들었던 예로 말하자면, 사용자의 식료품 구매 패턴을 기억하는 것은 냉장고 스스로도 할 수 있겠지만, 모든 식료품의 종류나 유통기한, 용량 등을 냉장고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냉장고는 사용자가 구매하는 식료품의 개별적인 정보를 주기적으로나 필요할 때마다 업데이트해야하는데, 냉장고 안에 식료품이 들어갈 때 해당 제품의 바코드를 읽는다거나, 사용자의 입력을 통해, 혹은 네트워크를 통해서 식료품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얻어진 정보를 냉장고가 파악하여 상황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 지능형 냉장고의 기본적인 서비스 모델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사용자 입장에서 가장 편리한 모델이 바로 바코드 등의 식별 장치를 이용하되 해당 물품의 상세 정보를 네트워크로 자동 업데이트 받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식료품 정보를 냉장고만이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예에서 보듯 식료품 정보를 냉장고에서 사용할 수 있겠지만, 조리용 전자 제품이나 유통 과정에서 사용되는 기기에서도 식료품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식료품 정보는 냉장고 제조업체가 아니라 식료품 제조업체 쪽에서 제공하되,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식품 정보 포맷을 이용하는 편이 좋겠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식료품의 기본 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웹 사이트에서도 동일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여러 기기에 제품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동일 데이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제공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하나의 문서로 여러개의 장치, 여러 형태의 정보로 제공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바로 웹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보다 작은 단위의 정보를 구조화해서 문서를 작성하고, 지능화된 장치, 검색 엔진이 동원된다면 하나의 문서를 다양한 형태로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래의 웹 페이지는 사람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기계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퍼즐 조각이 모여 커다란 그림이 되듯

미래는 멀리 있지 않다. 웹과 동떨어져 보이던 음성 인식 소프트웨어나 터치 패드 기술 등 새로이 등장하는 인터페이스부터 스마트 유리나 빠른 길을 찾아주는 네비게이션 소프트웨어, 집에 들어가면 집전화가 되고 외출하면 휴대전화가 되는 전화기, 다기능 모바일 장치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에는 이런 기기들이 직접 웹에 접속하는 경우가 흔치 않지만, 앞으로는 이용 형태는 다를지라도 현재 PC를 통해서 이용하듯 웹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웹 표준을 지키고 정보를 구조화하는 일은 웹 페이지의 속도를 빠르게 하고 사이트를 유연하게 만드는 효과만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 퍼즐 조각을 보면 서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그 조각들이 서로 만나서 커다란 그림을 구성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개별적인 진화를 묶어낼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것이다. 웹 표준을 지켜서 웹 페이지를 만들고, 사이트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그 퍼즐 조각들이 함께 놓일 판을 놓는 일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월간 w.e.b. 8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6개월 간의 마라톤을 이제야 끝내는군요. 졸필을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